2024년. 이 숫자는 마치 예언서의 한 페이지 같다. 누군가는 이 해를 “머스크의 시대”라 부르고, 누군가는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첫 단추”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아니, 머스크는 트럼프와 손을 잡았고, 이제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서 걸음을 떼고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이상한 화학작용
트럼프와 머스크. 이 둘이 함께라니, 무슨 기적의 화학반응이라도 일어난 걸까?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그는 머스크에게 “정부 효율 위원회”라는 기괴한 이름의 자리를 줄 거라고 했다. 이 자리의 역할? 간단하다. 돈을 줄이고, 규제를 없애고, 복잡한 것을 없애고, 또 없애고… 그러다 결국 뭐가 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머스크는 이 자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고? 자율주행, 바로 그 때문이다. 테슬라의 FSD 기술은 이미 도로를 달릴 준비가 끝났다고 머스크는 믿고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주마다 다른 기준으로 맞춰야 한다니? 이게 다 규제 때문이다. 규제를 없애면 길이 열린다. 그렇지 않겠는가?
자동차가 스스로 생각한다면?
자, 상상해 보자.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고, 당신은 그저 편안히 앉아 영화를 본다거나 이메일을 쓰는 풍경을. 머스크의 사이버 캡이란 이름의 자율주행 로봇택시는 그런 세상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택시일까? 아니, 이건 작은 거대한 혁명이다. 운전대도 없고, 페달도 없다. 가격은 3만 달러도 안 된다니, 이건 거의 마법이다.
하지만 이 마법은 어디까지 우리를 끌고 갈까? 개인 차량을 대체할지, 아니면 택시 산업 자체를 없앨지.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차를 소유하고 싶어 할까? 아니면 이제 차는 공유되고, 이동은 서비스가 될까?
규제는 창조를 막는가, 아니면 보호하는가?
머스크는 규제를 싫어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규제를 증오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규제는 로켓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는 규제의 벽을 넘기 위해 트럼프와 손을 잡았다.
미국의 50개 주는 각각 다른 교통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테슬라는 모든 주의 기준에 맞는 알고리즘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머스크의 입장에서 이건 어리석음의 극치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규정을 만들고, 그걸 모든 주가 따르기를 원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가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기술은 모든 것을 바꾼다. 그런데 인간은 준비되었는가?
머스크는 우리가 이동 시간을 “버리는 시간”에서 “창조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고, 이메일을 작성하고, 심지어 친구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그런데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자동차가 인간보다 더 안전하다면, 우리는 왜 두려워할까?”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답한다. “기술은 믿을 수 있지만, 기술을 만든 인간은 믿을 수 없다.”
트럼프, 머스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선택
트럼프는 머스크를 돕고, 머스크는 트럼프를 이용할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관계는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것을 권력의 공모라 부를 것이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머스크와 트럼프가 어떤 식으로든 그 미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들이 세우는 세상에 적응해야 할까, 아니면 그것을 막아야 할까?
결국, 이 모든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싶은가? 어떤 답이든, 2024년은 그 결정의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