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누군가에겐 동유럽의 낭만을, 또 다른 이에게는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의 관점에서, 그리고 특히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순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다. 왜냐면 이번 순방의 중심에는 하나의 굵직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원전 수주.
윤석열 대통령의 2박 4일간 체코 방문. 얼마나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품었을까? 두코바니 원전 사업, 체코와의 원전 협력을 통해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순간이 될 거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원전 동맹의 기반을 다졌다는 윤 대통령의 평가와는 달리, 우리는 아직 구체적인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 상태다. 체코 순방 전부터 이야기되던 대로, 계약 확정이 이번 방문의 목표였다. 하지만 그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 길로 가는 발판은 마련되었다. 윤 대통령은 이번 협상이 “체코와의 원전 동맹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발판에 그칠지, 혹은 그 이상의 성과로 이어질지, 아직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한국 원전 수출의 걸림돌인가
이쯤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웨스팅하우스. 이 회사 이름이 자꾸만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웨스팅하우스는 단순한 기술 기업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운 회사이자, 한국의 첫 번째 원자로인 고리 1호기 건설을 담당한 원전의 선구자다. 그런데, 문제는 이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의 원전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 자신들의 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지식재산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는 한때 원전 산업에서 빛을 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쓰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산업이 침체되면서 웨스팅하우스도 힘을 잃었다. 그 이후 30년 넘게 미국 내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한때 일본 기업에 팔렸다가,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 현재는 캐나다 기업에 인수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원전 기술의 선두주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독자적인 원전 기술을 바탕으로 체코에 원전을 수출하려 하자, 이를 가로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 기술, 우리 거야!”라는 식의 주장이다. 한국이 지금의 기술력을 쌓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기술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체코 원전 사업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
이쯤에서 다시 체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체코의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유럽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원전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다. 1000MW급 원자력 발전소를 170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체코의 국가적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과거 한국이 중동에서 진행했던 원전 사업과 비교해 다소 작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유럽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안보와 친환경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떠오르며 유럽 내에서도 원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체코 대통령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 프로젝트를 한국이 담당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이 원전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에 모범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의 소송 문제가 변수로 남아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서, 한국의 원전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 vs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은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24개의 원전을 건설했으며,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가 주장하는 기술 이전은 오래 전의 일이고, 지금의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강조한다. 마치 뉴턴의 후손들이 선조의 발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억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는 이전에도 한국의 원전 수출을 방해한 적이 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 당시에도 웨스팅하우스는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자신들의 부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지만, 이는 계약 조건에 따른 것이었다는 한국 측의 반박이 받아들여지며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번 체코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체코, 그리고 유럽 원전 시장의 미래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향이다. 체코 원전 사업은 한국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첫 단추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유럽 내에서 원전 수요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적 다툼이 계속된다면, 이 기회는 언제든지 위기로 변할 수 있다.
체코 반독점 기구에도 웨스팅하우스의 이의가 제기된 상황에서,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왔고, 이번에도 역시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
아쉬움과 희망이 공존하는 체코 순방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순방은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원전 수주라는 구체적인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한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다. 웨스팅하우스라는 걸림돌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국은 체코를 시작으로 유럽 원전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래다. 체코와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웨스팅하우스와의 문제도 잘 해결된다면, 한국은 유럽 시장에서 원전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불확실한 미래,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