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야 앞으로가 답이 없는 상황 아닌가요?”
요즘 사람들의 한숨 섞인 말에서 묻어나는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집단적 방향 상실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명확합니다. 경제는 침체하고, 부채는 늘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쳤습니다. 모두가 문제라고 인정하지만, 그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대응책? 해결책? 단어가 같다고 뜻도 같은가요?
사람들은 흔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대응책’과 ‘해결책’은 다릅니다. 대응책은 쉽게 말해 임시방편입니다. 이미 터져버린 문제를 일단 수습하려는 일종의 응급조치죠. 예컨대 집안에 물이 샌다고 하면 대응책은 대충 테이프로 막아두는 겁니다. 반면 해결책은 아예 배관을 새로 고치거나 설계를 바꾸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대응책’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응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금리를 조정하며, 다급하게 대책을 쏟아내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배관이 썩어가는데 테이프만 붙여두면 결국 더 큰 물난리를 초래하는 것처럼요.
왜 해결책을 외면하는가? 고통의 비용 때문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냉정히 말해서,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썩은 살을 도려내려면 고통이 따릅니다. 대출을 줄이려면 소비를 줄이고, 빚 갚는 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책적으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이걸 과감히 선택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는 것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면, 마트에서의 소비 패턴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누군가 고통을 더 많이 감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자가 생기게 됩니다.
사회적 합의는커녕 서로의 목소리만 외면하는 상황
더 큰 문제는 ‘문제’를 보는 관점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가격이 떨어지면 경제가 무너진다며 반발합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두고도 한쪽에서는 대출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다른 쪽에서는 대출 유동성이 막히면 중소기업과 가계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결국 서로 다른 주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정치권은 표 계산에 몰두하며 애매모호한 대응책만 반복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책이 나올 리 없습니다.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 경제를 살릴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눈앞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급급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 불편을 감수하고 근본적 원인을 찾는 일
지금은 모두가 고통을 감수해야 할 시기입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오늘의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업에서조차 모든 직원의 이해관계가 얽혀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인데, 국가적 차원에서는 그 어려움이 훨씬 더 큽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원인을 명확히 인식하고, 단기적인 대응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지금의 위기는 더 큰 문제로 돌아올 뿐입니다.
문제 해결, 개인이 아닌 모두의 몫
우리의 선택은 결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집안 살림도, 국가의 살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더 큰 희생이 따르더라도 해결책을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지금도 경제 위기의 징조가 곳곳에서 보입니다.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응책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단지 다른 이름으로, 더 큰 규모로, 우리 앞에 나타날 뿐입니다.
문제를 직면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답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적 사고의 본질 아닐까요?